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그 동안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 속에서 동고동락하셨다. 그러나 80세가 되신 해에 부처님은 아난 종자에게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내게 비밀은 없으며 육신은 이제 가죽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한동안 보리수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있었다. 삼매에 든 부처님은 깨달음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다. 이 때 최고의 신인 범천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다고 한다. 당시 부처님의 심정은 이렇게 전해진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수행자 고타마는 고행을 포기한 뒤 수자타가 올리는 우유죽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목동 스바스티카(吉祥)가 바친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을 보리수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굳은 다짐을 하였다.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여러 스승에게서 배웠으나,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이가 없었을 때,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 다른 수행자들이 그러했듯이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고행은 실로 다른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것이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찬탄한 《불소행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수행자를 만난 후 태자의 인생관은 점차 변모되었고, 마침내 부왕에게 출가하여 수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정반왕은 크게 놀라 온갖 말로 희유를 하였지만 태자의 결심은 추호의 변동이 없었다. 결국 부왕은 태자에게 왕위를 이을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세워 같은 석가족인 이웃나라 콜리성의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을 시켰다. 결혼을 하면 마음이 돌아설 것이라는 부왕의 생각도 해탈의 길을 찾으려는 태자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하였다.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싯달타 태자는 왕궁의 풍요 속에서 총명하고 건강하게 자랐다. 7세가 되자 태자는 학문과 무예를 익히기 시작하여 곧 모든 학문과 무에를 통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만한 스승이 없게 되었다. 아버지 정반왕은 그를 극진히 생각하여 계절에 따라 생활하도록 궁전을 세 곳(三時殿)이나 지어주는 등 온갖 호사 속에 성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도성 출입만은 언제나 금지시켰다. 태자가 현실세계의 고통을 모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카필라국은 히말라야 남쪽 기슭의 초목 지대에 자리한 조그만 왕국으로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이웃에는 코살라와 마가다와 같은 큰 나라들이 있어 위협을 받고 있었으나 비교적 풍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약2,600여년 전, 기원전 624년에 지금 네팔의 타라이 지방인 카필라(Kapila)국 사캬(Sakya, 釋迦)족의 정반왕과 왕비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났다. 성은 고타마(Gotama, 최상의 소라는 뜻)였고, 출가하기 전 이름은 싯달타(Siddh rtha,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였다. 고타마 싯달타가 출가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자 사람들은 그를 석가모니(Sakyamuni) 즉,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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