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게 하는 조건을 5계와 10선업으로 든 것은, 선과 악을 판별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의지와 능력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불교가 이 같은 관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이해한다는 사실은 여러 불전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인간이라는 말의 유래를 더듬어 보면, 인도에서는 일찍이 인간을 ‘생각하는 자’로 정의하였다. 범어로 인간은 ‘마누쉬야’(manuSya)이다. 이 말은 ‘생각하다’라는 뜻을 지닌 만(man)이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인간의 특성을 생각하는 능력으로 이해한 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인간의 특성을 파악했다. 즉 마누쉬야와 결부된 명사로는 마나(maana)와 마나스(manas)를 드는데, 마나는 교만을 뜻하고 마나스는 마음 또는 의식을 뜻한다. 마음이나 의식은 생각이라는 특성과 다를 바 없지만, 교만은 그 취지가 사뭇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교만은 자신의 생각을 과신한 데서 나온 것이고 보면, 그것은 인간의 특성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불전 중에서 입세아비담론은 권6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를 여덟 가지로 제시한다. 즉 인간은 총명하고, 우월하고, 생각이 섬세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 지혜가 증대하고, 거짓과 진실을 분별할 수 있고, 성스런 도를 성취할 역량이 있으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업을 짓는다. 이것들은 주로 인간의 장점을 열거한 것이다.

한편 대비바사론 제172에서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즉 인간은 자신이 행한 일들을 생각을 통해 사유하고 관찰할 수 있으며, 교만이 많으며, 마음을 고요하고 평안하게 다스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이에 의하면 인간은 교만한 존재이지만, 바른 사고의 능력으로 자신을 계발하여 평안의 경지로 들어갈 수 있는 존재이다.

대승 경전에 속하는 대반열반경의 제10에서는 장점과 단점을 포함한 인간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간명하게 제시한다. 이에 의하면 인간은 많은 도리를 생각할 수 있고, 신체와 언설이 유연하고, 교만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경전은 이에 그치지 않고, 교만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의 특성으로 첨가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특성을 네 가지로 좀더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는 대비바사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불교에서 파악한 인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인간이 우월한 것은 생각하는 능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하는 능력으로 인간은 교만에 빠지기 일쑤이다. 그러나 인간은 바로 그 생각하는 능력으로 교만을 버리고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실현할 수 있다.